베네수엘라는 세계에서 가장 극단적인 화폐 위기를 경험한 나라 중 하나입니다.
한때 중남미에서 가장 부유한 산유국이었지만, 경제 붕괴 이후 **‘돈의 가치가 종이보다 못한 시대’**가 찾아왔습니다. 그 결과 베네수엘라 사람들은 돈을 세는 대신 **“무게로 달아 계산”**하는 기이한 문화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베네수엘라의 하이퍼인플레이션이 왜 발생했는지, 돈 문화가 어떻게 변했는지, 그리고 그 속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생존해왔는지를 깊이 있게 살펴보겠습니다.

1. 왜 베네수엘라에 하이퍼인플레이션이 왔는가
베네수엘라 경제 위기는 단순한 물가 상승의 문제가 아닙니다. 국가 구조가 무너진 복합적 결과였습니다.
1) 석유 의존 경제의 붕괴
베네수엘라는 수십 년 동안 수입의 90% 이상을 석유에 의존했습니다.
하지만 유가 폭락이 시작되자 정부 재정은 순식간에 바닥이 나버렸습니다.
2) 통화 남발(돈 찍어내기)
재정 부족을 메우기 위해 정부는 중앙은행에 무제한 화폐 발행을 지시했습니다.
결과는 예측 가능했습니다. 돈이 시장에 넘쳐나면서 화폐 가치는 떨어지고 물가는 폭주하기 시작했습니다.
3) 정치·사회 불안
부패, 제재, 국영 기업의 비효율 등이 겹치면서 경제 구조가 사실상 기능을 잃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통화 정책은 효과를 잃고, 인플레이션은 통제 불가능한 수준으로 치달았습니다.
2. 돈이 '종이조각'이 되다 – 믿을 수 없는 물가 폭등
하이퍼인플레이션의 충격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 2018년 인플레이션율: 1,000,000% 이상
- 커피 한 잔 가격이 아침과 저녁이 다름
- 빵 한 조각을 사기 위해 지폐 뭉치를 들고 다녀야 함
- 현금을 세는 데 너무 오래 걸려서 가게에서 돈을 ‘대충’ 받음
- 지폐 인쇄 비용이 지폐 액면가보다 비싸짐
특히 마지막 항목은 베네수엘라 화폐 가치가 얼마나 떨어졌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입니다.
돈이 돈으로서의 기능을 잃자 인민들은 지폐를 찢어 장식품으로 만들거나, 지갑 대신 비닐봉지에 돈을 담아 들고 다니게 되었습니다.
3. ‘돈을 무게로 재는 문화’의 탄생
지폐가 너무 많아지자 계산 방식도 달라졌습니다.
특히 시장이나 소규모 상점에서는 “돈을 무게로 재서” 가격을 매기는 모습이 널리 퍼졌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1) 지폐의 양이 너무 많아서 개수를 셀 수 없음
빵 하나를 사는 데 수천 장이 필요한 경우도 있어, 일일이 세는 것은 비효율적이었습니다.
2) 무게가 액수의 기준이 됨
같은 액면 지폐라면 무게가 동일하므로, 상인은 저울 위에 올려 무게로 지불을 받았습니다.
3) 돈의 개념이 ‘단위’가 아닌 ‘물량’으로 변함
이 시기에 베네수엘라에서 돈은 더 이상 가치의 척도가 아니라, 단순한 종이 뭉치에 불과했습니다.
4. 사람들이 선택한 다른 형태의 ‘돈’들
베네수엘라 사람들은 화폐를 포기하고 다른 방식으로 경제 활동을 지속했습니다.
1) 미국 달러화 사용 확대
달러는 믿을 수 있는 가치 저장 수단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거리 식당, 택시, 상점 모두 달러를 받기 시작하면서 사실상 비공식 달러화가 이루어졌습니다.
2) 물물교환
돈으로 물건을 살 수 없거나 가격이 너무 불안정하기 때문에,
식료품·의약품·연료 등을 교환하는 ‘교환 경제’가 확산되었습니다.
3) 암호화폐 사용 증가
서민층뿐 아니라 상인들도 비트코인·USDT 같은 암호화폐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국가 통화보다 오히려 더 안정적인 ‘가치 저장 수단’으로 본 것입니다.
5. 화폐 개혁 – 하지만 끝나지 않은 위기
정부는 화폐 단위를 여러 번 없애는 ‘리데노미네이션’을 시도했습니다.
- 2008년: 3자리 삭제
- 2018년: 5자리 삭제
- 2021년: 6자리 삭제
총 14자리 이상이 사라진 셈입니다.
하지만 경제 구조가 개선되지 않으니 화폐 개혁은 임시방편에 그쳤고, 인플레이션은 다시 반복되었습니다.
6. 베네수엘라가 남긴 중요한 교훈
베네수엘라의 하이퍼인플레이션은 단순히 경제 위기가 아니라, 화폐 시스템이 무너질 때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입니다.
- 화폐의 가치는 국가 신뢰가 지탱한다
- 통화 남발은 경제 전반을 붕괴시킨다
- 돈이 기능을 잃으면 사회의 모든 교환 활동이 혼란에 빠진다
- 하이퍼인플레이션은 정치·경제·사회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힌 현상이다
베네수엘라는 “국가의 화폐가 가치 저장 기능을 잃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현실판 교과서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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